화장과 성형, 그리고 얼굴의 이데아 옛날 글들



written on 2012/9/2



나는 모든 정보를 거의 인터넷에서 얻기 때문에,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친척집에 들렀을 때 우연히 SBS에서 하는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아마 대중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출연하여 자신의 잡기(雜技)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거기서 화장의 오의(奧義)를 터득한 듯한 여성 두 분이 출연하였는데, 대박이더라;; 사람 얼굴이 화장 하나로 저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학점으로 치면 D-에서 B+로 수직 상승한 상황인 것이다. 원판 불변의 법칙에 갇혀 A는 될 수 없더라도, 이 정도면 정말 혁명적인 정변¹이요, 인류 문명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¹ 역변의 반의어

 

그런데 방송을 보면서 한 가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었다. 화장 후의 모습을 볼 때는 우와우와~”하면서 초롱초롱한 눈길을 보였던 게스트들이, 민낯을 공개하자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던 것이다. 외모지상주의의 일면과 함께 한편으로는 기저에 화장과 성형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화장과 성형을 통해 만들어진 미는 진정한 미가 아니다같은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인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동서고금, 인간과 금수를 막론하고 미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생존을 위한, 생물체 본연의 욕구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수컷 공작의 꼬리깃은 크고 화려하였으며, 수사슴은 거대한 뿔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인간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전족을 하여 발이 작은 여성이 미인 대우를 받았으며, 태국의 카렌족에서는 목에 고리를 더 많이 걸을수록 아름다운 여성으로 인정받았다. 각자가 미의 기준은 달랐을지언정, 탐미는 어느 생물에서도 똑같이 관찰되는 전지구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화장과 성형 등도 이와 같은 탐미의 한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얼굴이 과연 orthodox인가, 진정한 민낯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우선 점유 시간의 관점에서 이를 생각해보자. 보통의 여성들은 아침에 밖에 나갈 때 화장을 하고, 밤에 집에 들어와서 화장을 지운다. 편의상 외출을 오전 8, 귀가를 오후 8시로 가정한다면 12시간 정도는 화장한 얼굴로 있고, 12시간은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있는 셈이다. 밖에 나가있는 시간을 최소한도로 잡았기 때문에 화장을 하고 있는 시간은 12시간보다 길면 길었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에서 화장한 얼굴로 있는 시간이 많은데 왜 이러한 상태를 normal state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다수를 집합의 대표라 생각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으로부터 얼굴은 왜 예외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외모는 꽤나 역동적이다. 주변 환경, 또는 자신의 내적인 상태에 따라 외모는 시시각각으로 급변한다. 예컨대, 얼굴은 사람의 머리에 붙어있는 피부의 구성 방식으로만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얼굴이 달라보이는 경우도 있고, 어떠한 헤어스타일을 하느냐에 따라, 안경을 쓰냐 안 쓰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결국 코를 깎거나,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것부터 시작에서 손으로 머리 모양을 만드는 것까지 모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신체정보를 인위적으로 조작, 변형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얼굴을 민낯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신체 정보의 조작 및 변형의 범위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인터넷에서 아바타 꾸미기를 할 때처럼 나체이고 머리카락이 없는, 그러한 상태에서의 얼굴을 민낯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특정한 헤어스타일에 특정한 복장을 착용했을 때의 얼굴을 민낯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사실상 민낯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각형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은 정삼각형의 이데아와 같은 것인가, 아니면 이등변 삼각형의 이데아와 같은 것인가? 정삼각형의 이데아와 이등변삼각형의 이데아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 나는 민낯에 대한 관점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민낯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외모는 시시각각 급변하는 외적·내적 환경에 동조하여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화장, 성형 등으로 변한 얼굴도 그것의 여러 가지 모습들 중 하나임을 인정하면서 이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