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포스팅에 대해 가장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http://blog.naver.com/seosin321/220768868139 를 참조하십시오.
* 조금 더 편하게 읽고 싶으시다면 첨부된 PDF 파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전문 PDF 파일 : The_Failure_of_Gunmyungwon.pdf
* 건명원 교육의 실패 A/S가 나왔습니다. 본 포스팅과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http://blog.naver.com/seosin321/220905381449
나는 7월 18일 부로 건명원에서 제적되었다. 바로 그 전날 17일 워크숍이 끝날 때까지 상반기 평가 결과에 관련된 공지는 전혀 받지 못했고, 워크숍이 끝난 후 이튿날 저녁 6시 즈음, 메일로 제적 통보를 받았다. 정리해고 당하는 사원도 문자메시지로 통보 받는데, 제적당하는 사람에게는 문자 값도 쓰기 아까웠나 보다. 제적 사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 느낌으로는 아마 라틴어 점수가 좋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건명원 측에서 밝힌 바로는 ‘원생의 출결, 제출된 과제, 퀴즈 성적, 기말고사 참여 여부 및 그 성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평가’하였다고 한다. 이른바 ‘시대의 반역자’, ‘창의 전사’를 기른다고 한다는 곳에서 이렇게 정량적인 평가 기준만을 내세워도 되나 싶지만, 내가 돈 내고 여기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우선은 상임교수회의 권한이니 존중하기로 하자. 하지만 확인해보니 라틴어 성적도 우수하고 하루도 결석하지 않은 원생도 제적당했다고 하니 그 기준을 도통 모르겠다. 들어올 때도 교수 마음대로 뽑았으니, 나갈 때도 교수 마음대로라는 건가.
조금 아쉽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된 일인가 싶기도 하다. 만약 건명원을 끝까지 다니고 그들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갔다면 이 때문에 건명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다. 사실, 다니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에 실망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개인 SNS에는 이에 대해 몇 차례 토로한 적도 있다. 비록 자의는 아니었지만 중간에 건명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니, 그동안 공유했던 비판들을 포함해서 나의 생각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주신 건명원 측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어차피 건명원은 나의 수많은 지식 채널 중에 하나였다. 나는 이미 많은 강연, 토론회, 포럼, 독서모임 등을 통해 지식을 쌓고 사고를 단련시키고 있었다. 겨우 건명원 하나 빠진다고 해서 무너져 내릴 정도로 내 학습 체계는 그렇게 허약하지 않았다. 건명원에 다니기 전에도 나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바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오히려 건명원 일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건명원에서의 제적은 나에게는 일종의 해방이기도 한 셈이다. 지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은 없다. 3개월 동안 1주일에 8시간 씩 다니면서 건명원의 수준은 충분히 알았으니까. 다만 몇몇 소중한 분들과 헤어진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기에,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앞으로 쓰게 될 대목에는 사심이 일부 들어갈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빠하는 인간이니까. 이런 점을 고려하고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우선 처음 확실히 해둘 것은, 건명원의 구성원들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거나, 건명원이라는 시도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비록 건명원에서 제적되긴 했지만 아예 건명원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나온 것도 아니고, 또 짧은 기간이나마 물질적으로든, 학습의 측면에서든 다소의 혜택을 받은 입장에서 그것은 예의가 아니기도 하다. 애초에 뜻있는 기업인이 거액을 쾌척하여 사회에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할 청년들을 길러낸다는데 얼마나 훌륭하고 감사한 일인가. 십 수 권에 달하는 교재도 무료로 제공하고, 밥 굶지 말라고 끼니도 챙겨 준다. 그리고 이번 학기 마지막에는 물 좋고 산 좋은 곳으로 MT도 보내주었다. 내가 만약 건명원 설립자이자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인 오정택 두양 회장의 입장이었다면 120억 원이라는 큰 돈을 출연하여 마찬가지로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오 회장은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훌륭한 양반이 오롯이 자기 돈 내서 교육 사업을 시작했는데 반드시 성공해야 되지 않겠는가? 120억이라는 큰 돈이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인재 하나 길러내지 못하고 허투루 사라진다면 너무나도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과연 건명원이 설립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한 번 쯤은 검토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또 지금이 처음도 아니고 이미 1년이라는 시행착오를 거친 뒤 아닌가? 이 시점에서 건명원이 현재 서 있는 위치를 검토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기존에도 훌륭한 고언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도 많았다. 번뜩이는 통찰에 감동하여 나도 몇 번 공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 분들은 부외자다. 건명원에 들어가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제대로 보시지 않은 상황에서 신문 기사나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명원의 여러 가지 한계들을 잘 짚어주셔서 놀라긴 했다. 여기에, 직접 입학하여 3개월 동안 건명원을 경험한 나의 생각이 덧붙여진다면 앞으로 건명원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이 글을 쓴다.
◆ 건명원과 그것이 꿈꾸는 인재상 사이의 모순
우리는 창의, 창조, 상상, 이야기 등이 독립적 주체성을 가진 인간에게만 가능한 능력임을 안다.
이 독립된 인간의 창의적 동력은 내면에 비스듬한 기울기가 형성되어 있을 때 비로소 발현될 것인데, 이 기울기는 다양한 분야의 내적 충돌로 빚어진다. 그래서 창의성을 드러내려는 인재는 스스로 이질적 분야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갈등할 수 있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의미로 건명원에서 우리는 한 인간 내면에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그리고 예술 등과 같은 제반 분과학문들이 서로 투쟁하면서 만들어 낼 소음들을 기대한다. 이렇게 하여 건명원에서는 결국 창의적 전사를 양성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사회적 공헌으로 인정될 것이다.
건명원에서 젊은 피들은 불안과 갈등을 해소시키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품어버리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다. 그것들을 품고 자신의 주체적 삶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으로 우리 사회를 창의적 기풍으로 채울 것이다. 결국 우리는 거침없이 내 달리는 기상으로 무장하여 조국의 거대한 웅비를 실현한다.
- 건명원 비전 中
홈페이지에 있는 비전이나 신문 인터뷰 등을 참조하면 건명원은 ‘인문, 과학, 예술 분야의 공부를 바탕으로 자신 안에 이질적인 것들을 충돌시켜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재’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한창 통섭 유행할 때, 자유전공학부 만들 때 나왔던 말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중요한 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수업이 제대로 구성되어 있느냐다. 일단 수업 구성 자체는 다채롭다. 대학에서는 잘 가르치지 않는 라틴어, 중동 문명(배철현)이라든지, 뇌과학 및 인공지능(김대식)이라든지. 또 키루스나 마키아벨리 등과 연관지어서 지배자의 덕목에 대하여 배운 적도 있다. 그리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니만큼 좀 더 깊이 있게 가르친다. 최진석 교수야 노자 강의로 유명한 양반이고, 문학평론가로 유명한 이광호 교수의 문학 강의도 괜찮았다. 강의의 질 자체는 적어도 평균 이상은 간다.
그러나 강의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엮여서 어떠한 목표를 가리키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를 잘 녹여내어 창의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롯이 학생의 몫이다. 교수들은 각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르칠 뿐이다. 뇌과학 강연과 중동 문명에 대한 강연 중 내용의 일부가 겹치는 일도 있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었고 이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달랐다. 그들도 서로 입을 전혀 맞추지도 않고 나왔는데 자료가 겹쳐서 놀라워했을 뿐이다. 물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들을 나누기 때문에 가르치고자 하는 방향성 자체는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의도적 기획 아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강의들은 분절되어 나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물론 한 기관에서 이 모두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긴 하다. 그러나 다소의 노력만 있다면 굳이 건명원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지식들을 더욱 심화된 수준으로 습득할 수 있다. 요즘은 책이나 강의 같은 것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딱히 건명원만의 ‘고유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개개인의 고유한 욕망, 언어, 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명원이 정작 고유하지 않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 ‘암기’로 ‘만들어진’ 창의전사?
그리고 건명원에서 중요시하게 여기는 공부 방식인 ‘암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건명원의 공부를 이끌어 가는 양대 축은 ‘도덕경’과 ‘라틴어’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강의 스케줄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교수들의 강의 시수는 10시간(5강)으로 특강에 가깝다. 각각 66시간(33강)에 달하는 도덕경과 라틴어야말로 건명원 공부의 핵심이고, 제적과 잔류 여부를 결정하는 평가 또한 이 두 과목이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 두 과목 모두 상당한 암기를 요구한다. 도덕경에 나오는 한자들과, Wheelock’s Latin에 나오는 옛 사람들의 명문장을 통으로 외워야 한다. 도덕경의 경우는 빈 칸에 들어갈 한자를 직접 써서 채우는 방식으로 시험을 봤으며, 라틴어는 영어 문장-라틴어 문장 간의 상호 번역, 그리고 교재에 나오는 문헌의 출처를 제시하면 외운 것을 바탕으로 라틴어 문장과 그 해석을 모두 쓰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무식하게 다 외우지 않고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시험이다.
도덕경과 라틴어 열심히 공부하는 것, 좋다. 그 내용을 확실히 체득하기 위해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도 동의한다. But, So what? For what? 건명원에 모인 사람들이 동서양의 고전 문헌을 깊이 공부해서 문학박사라도 따려고 모인 사람들인가? 문제는 그것이 과연 건명원이 지향하는 ‘반역자’, ‘창의적 전사’를 길러내는데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키케로의 <국가론> 모두 훌륭한 책들이다. 깊이 읽으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명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옛말에 평양 감사라도 저 싫으면 그만이랬다.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신네들이 창의 인재로 손꼽길 주저 않는 빌스저 트리오ㅡ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ㅡ가 도덕경 배우고, 라틴어 배워서 그렇게 되었나? 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열심히 매진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다루었기에 길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김대식 교수도 말했듯이 “‘잡스 만들기 프로젝트’ 같은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건명원은 그저 도와주는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될 뿐이다. 그의 말마따나 “가장 창조적인 5% 인재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최상”이다.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판만 만들어주고, 그 다음에는 본전 생각하고 이것저것 강요하면 안 된다. 그런데 강의를 잘 해서 도덕경과 라틴어에 흥미를 갖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통째로 외운 것을 바탕으로 시험을 보고, 이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제적 여부를 결정하는 건명원에서 과연 창의의 ‘ㅊ’이라도 말할 수 있는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훈고에 갇히는 것이 아닐까? "암기로 지식을 쌓는 까닭 역시 옛 사유 체계의 경계에 도달해 그것을 부수기 위해서다"라는 답변 역시 허울 좋은 말장난일 뿐이다. 혹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새누리당에 들어가 보수 혁신을 이루겠다.”, “민주당에 들어가 민주당을 왼쪽으로 견인하겠다.” 결국 암기를 넘어서겠다고 들어가서, 암기에 매몰되고 훈고와 답습에 갇히기 십상이다.
이런 이야기가 안 나온 것도 아니다. 이미 외부에서 수많은 비판이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이런 걸 외우는 게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모 교수가 답한 적이 있는데,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외우는 게 중요하다. 외운 사람과 외우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난다. 지식을 10만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는 행동과, 100만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양과 질이 다르다. 지식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지식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노트필기를 바탕으로 한 거라 정확한 워딩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뉘앙스였던 것은 확실하다. 물론 맞는 말씀이고, 좋은 말씀이긴 한데 역시 내가 제기한 의문에 답해주지는 못한다.
◆ 당신들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습니까?
애초에 건명원 구성원들 사이에 인재상, 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컨센서스가 부재한 것처럼 보인다. 각 교수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저마다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창의 인재’라는 총론에서만 일치할 뿐, 그것이 무엇이냐라는 각론은 저마다 달랐다. 마치 교수들의 강의가 분절적으로 느껴졌던 것처럼. ‘창의적 인재’가 중요한 것인지, ‘지배자의 자질’이 중요한 것인지 교수마다 다르고, 또 때에 따라 다르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코끼리를 만지면서 서로 “이것이 코끼리요”, “저것이 코끼리요” 하는 장님들이 떠올랐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건명원 2기 워크숍에서 그것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조국이 더는 이런 후진적 비극을 겪어선 안 된다'는 오정택 이사장의 설립 취지나, ‘조국의 거대한 웅비를 실현하는 일에 헌신한다’는 우리의 정신의 한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건명원은 자신의 영달이나 지적 유희에만 매몰되는 소아적 지식인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능동적 지성인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진석 교수는 이를 ‘자기의 욕망과 시대적 사명이 일치하는 인재’라 이름하였고, 김개천 교수 또한 "진정한 공부는 개인의 지적 유희나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과 공동체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앎을 사회가 공유할 때 비로소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생들이 건명원을 준비하면서 이런 기사들을 많이 봤었고, 또 수업 중에서도 ‘지배자가 되는 것’, ‘사회에 창의적 기풍을 가져다주는 것’등을 대단히 강조했었기 때문에 워크숍에서도 자신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그런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사람이 나중에 보면 자신에게도 좋고, 결과적으로 사회에도 더 도움이 되더라.”는 이사장의 말을 필두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교수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예컨대 모 교수는 “나는 사회를 위하고, 선한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욕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 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이 되기가 힘들다. 욕망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다 싹쓸이하여 가지려고 한다. 자기가 그 분야에서 지배하려고 한다. 여러분은 지배하기보다 주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남이 선점한 게 없는 것에 주목하라. 새로운 분야는 지배하기 좋은 분야다. 그게 바로 나의 것으로 선점하게 만들고, 자신의 삶을 거대하게 만들 수 있는 욕망이 있는 자의 모습이다.”라며, 오히려 아직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을 칭찬하더라.
말 자체로는 그렇게 틀리지는 않은 말인데 굉장히 나이브한 인식이고, 또 학생들을 낮추어보는 인식이다. 사람이 진정 남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람의 모든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자기 뇌에서 느껴지는 어떠한 강력한 전기 자극을 얻기 위해 행하는 것이란 말이다. 다만 그것이 남들에게 이익을 줄 때, 사람들을 이를 이타적이라 부르고 자신에게만 이익이 될 때는 이기적이라고 부를 뿐이다. 자기 욕망의 서로 다른 표현형을 두고 한 쪽은 욕망이 있다/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피상적인 인식이다. 아니면 학생들은 아직 자기를 찾지 못해 사회를 이야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명원 운영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하자. 아무리 작은 단체라도 정관 같은 규칙이 있고 그것에 따라 운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놈의 건명원은 홈페이지 어느 곳을 찾아봐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다니면서도 이에 대해 전혀 들은 바 없다. 제대로 된 규정 하나 없고, 그 때 그 때 교수들 간의 합의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다. 무슨 교수들 친목단체도 아니고 이게 뭐야 대체. 커리큘럼에 있어서도 학생들은 능동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는커녕 수동적으로 트레이닝 당하는 존재일 뿐이다. 수업 방식이나 방향에 대해서도 한 번 말이 나왔었는데 이에 대한 모 교수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창의고, 반역이고 나올 수 있겠나. 강의실 안에서부터 반역을 철저히 억누르는데 무슨 시대의 반역자가 출현할 수 있겠냐고? 워크숍에서 모 교수가 언급했었던 “우리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혁명을 하려는 그 자신이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역으로 교수들에게 던져주고 싶다. 자신들부터가 혁명된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학생들을 반역자로 길러낸다고 한단 말이지?
◆ 당신들은 실패할 것이다.
물론 내 돈 내고 배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여러 가지 혜택 받으면서 배웠던 거니까 내가 관여할 권리는 없다. 꼬우면 나도 돈 벌어서 따로 만들든가 해야지 원(...) 그렇지만 ‘시대의 반역자’, ‘창의 전사’들을 길러낸다고 하는 건명원이 이러면 안 되는 것이지. 악담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지금 이대로 계속 가면 당신들은 반드시 실패한다. 훌륭한 교양인이나 인문학으로 치장된 지식인은 길러낼 수 있어도, 그렇게 강조하는 ‘시대의 반역자’, ‘돌연변이’, ‘창의 전사’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오히려 있던 반역의 싹마저 제거해버릴 것 같은데? 뭐, 어차피 ‘실패를 각오한 특공대’라고 하니 실패하더라도 크게 억울해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또 하나의 반면교사로써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상이 나의 편파적인, 건명원에 대한 소회다. 반론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내가 미처 보고 듣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중간에 잘린 난 결국은, ‘반쪽짜리’니까. 2학기 때 보여주거나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comment나 반박 등 뭐든지 좋다. 나는 언제든지 이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참고 자료]
- 신문 기사
1. 박민, (2014. 7. 25), “‘가장 창조적인 5% 인재’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최상”, 문화일보
2. 원선우, (2015. 8. 29), [Why] 21세기 스파르타式 서당 "창의력은 훈련되는 것", 조선일보
3. 김민희, (2016. 2. 1), 한국의 스티브 잡스 양성소 건명원 1년… 30명 중 생존자 11명, 주간조선
4. 전병근, 윤예나, (2015. 1. 31), [인터뷰] "건명원…세상에 없던 학교 실험해 볼 것", 조선비즈
5. 배명복, 오종택, (2015. 3. 20),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건명원 기획한 서울대 배철현 교수, 중앙일보
6. 전형우, (2015. 4. 17), [학계화제] 한국의 ‘마쓰시타 정경숙’ 서울 북촌 ‘건명원’의 실험 - “여러분은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돼주십시오”, 중앙시사매거진
- 웹 사이트
1. brielus ya, 2016, 반역자를 기른다는 건명원, Retrieved from http://yabrielus.blogspot.kr/2016/05/blog-post_41.html
2. 이진호, 2016, 건명원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Retrieved from http://www.disslike.net/archives/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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